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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 월남쌈보다 오래된 우리 음식? 잊혀진 여름 절식 '밀전병'의 숨겨진 진실

by 모모3 2025.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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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투명한 라이스페이퍼에 채소와 고기를 싸 먹는 월남쌈이 훨씬 익숙합니다. 건강식으로 자리 잡은 월남쌈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죠.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나라에는 월남쌈보다 훨씬 오래된 얇은 전병 문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밀전병(밀煎餠)**입니다. 사극 드라마에서만 봤던 구절판의 핵심 재료이기도 한 이 음식,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요?

밀가루반죽 얇게 부쳐서 야채등으로 속을 채워 둘둘 말아놓은 밀전병
밀전병

 

밀전병, 단순한 전병이 아니었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전통

경상북도 경주시 월성 유적이나 백제 군창지 등에서 탄화된 밀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에는 이미 밀이 재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밀전병은 여름철 시식(時食)의 하나로, 유두일 전후 때는 밀을 거두어들이는 시기이므로 새로 수확한 밀을 가루내어 전병을 부쳐 조상에게 유두절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즐겨왔던 음식임을 보여줍니다.

여름철 특별한 의미

밀전병은 그냥 배고플 때 먹는 간식이 아니었습니다. 음력 6~7월, 막 수확한 햇밀로 만드는 **여름철 절식(節食)**이었죠. 애호박을 섞어서 기름에 지져 여름철 시식으로 많이 먹어왔으며, 먹을 때는 초간장에 찍어 먹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왜 밀전병이 그렇게 귀했을까? - 한국 농업의 현실

현대인들에게는 밀가루가 너무 흔해서 '밀전병이 뭐가 그리 귀했을까?' 싶지만, 조선시대 상황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기후와 농업의 한계

고려도경에 고려에는 밀이 적어 화북지방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밀가루의 값이 매우 비싸서 잔치 때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한국 기후의 특성: 여름 장마철 고온다습 → 밀 농사에 불리
  • 벼농사 중심 사회: 밀은 부차적 곡식 취급
  • 지역 제한: 북부·강원 같은 서늘한 지역에서만 제한적 재배

예전에는 귀한 곡물이어서 밀전병·유밀과와 같은 별식이나 간식, 또는 누룩과 같은 특수한 용도로 쓰였다는 기록이 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구절판의 숨겨진 주인공, 밀전병

사극에서나 보던 그 음식의 정체

구절판의 기원은 밀쌈이다. 이는 조선시대의 궁중 잔치를 조선요리법, 이조궁정요리통고 등에 언급되어있는데, 정작 그 기원인 밀전병 쌈은 현대에는 완전히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전통 한국 음식 밀전병(밀煎餠). 접시 위에는 얇은 밀전병 여러 장이 겹겹이 쌓여 있고, 옆에는 볶은 애호박채·버섯·당근 채소를 올려 자연스럽게 돌돌 만 밀전병이 놓여 있다. 초간장 작은 그릇과 쇠젓가락이 함께 개다리밥상 위에 차려져 있으며, 따뜻한 조명 속에 사실적인 음식 사진처럼 표현되어 있다.”
밀전병, 구절판

 

아홉으로 나누어진 목기에 채소·고기류 등의 여덟 가지를 둘레에 담고 가운데에 담은 밀전병에 싸면서 먹는 음식인 구절판은 궁중과 양반가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궁중의 화려함 vs 서민의 소박함

구절판 속 밀전병:

  • 둥근 나무 그릇에 아홉 칸을 나누어 다양한 재료 배치
  • 소고기 육회, 콩팥, 양(위장), 천엽, 당근, 오이, 표고, 배 등 고급 재료
  • 밀전병을 그자리에서 부쳐야 하는데 이것이 심히 품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재료 하나하나를 만들기는 힘든데 정작 그 요리 자체가 그렇게 특별한 맛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대에는 고급 한정식집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민들의 밀전병 문화: 하지만 서민들도 밀전병을 아예 못 먹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구절판처럼 화려하게 먹을 수는 없었죠.

오이나 애호박을 채쳐서 소금에 약간 절였다가 꼭 짜서 넣고, 혹 김치를 채쳐서 넣고 지져도 좋고, 풋고추를 잘게 채쳐서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가늘게 채쳐서 양념해서 넣고 지져도 좋다는 기록에서 보듯, 서민들은 간단한 채소나 나물을 밀전병에 넣어 먹었습니다.

 

서민들만의 밀전병 활용법

제사와 절기의 특별한 음식

궁중음식문화는 잔치 때 반기라는 풍습으로 사대부에게 전해지고 이는 다시 서민에까지 전달되어 우리 음식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는 기록처럼, 서민들에게 밀전병은 특별한 날의 음식이었습니다.

서민들의 밀전병 먹는 법:

  • 여름철: 애호박, 오이를 소금에 절여 물기를 짜고 밀전병에 넣어 먹기
  • 제사 때: 조상에게 올리는 정성의 음식
  • 간편식: 김치나 장아찌 같은 저장 식품을 곁들여 간단히 싸 먹기
  • 새참용: 농부들이 들일할 때 허기를 달래는 음식

서민들은 이 문화를 향유할만한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자류의 간식들은 조상을 모시는 명절이나 제사 때에나 맛볼 수 있는 귀하디 귀한 것이었습니다는 기록이 당시 서민들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손이 많이 가는 정성의 상징

왜 정성 음식이었을까?

밀전병 만들기는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이었습니다:

밀가루에 물을 붓고 소금을 조금 넣어 골고루 저은 반죽을 기름 두른 번철에 조금씩 떠놓아 얄팍하게 부쳐낸다는 단순해 보이지만:

  1. 반죽을 곱게 만들기
  2. 얇게 펴서 정성스럽게 부치기
  3. 5장, 7장, 많게는 10장씩 여러 장 겹쳐 상에 올리기

지금처럼 간편식이 넘쳐나는 시대와 달리, 옛사람들은 이런 '수고로운 음식'을 정성의 표시로 여겨 제사상에 올렸습니다.

 

월남쌈과 비교되는 우리 음식 문화의 가치

글로벌 vs 로컬의 대조

  • 월남쌈: 베트남 음식, 글로벌화로 대중적 확산
  • 밀전병: 삼국시대에는 이미 재배되고 있었던 밀로 만든 한국의 전통 얇은 전병 문화

흥미롭게도 월남쌈과 밀전병의 공통점이 많습니다:

  • 얇은 전병에 다양한 재료를 싸 먹는 방식
  • 신선한 채소와 고기의 조화
  • 소스(겨자장 vs 느억맘)와 함께 즐기는 문화

 

한복을 입고 밀전병을 부칙로 있는 여성
밀전병 부치는 조선시대 여인

 

결정적 차이: 생채소 vs 조리된 나물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차이점은 바로 재료 조리법에 있습니다:

월남쌈: 대부분 생채소 중심

  • 파프리카, 적양배추, 당근, 깻잎 등을 날것 그대로 사용
  • 신선함과 아삭한 식감이 특징
  • 오색찬란한 빛이 보기에도 좋고 고기나 해물 등의 육류를 싱싱한 채소와 곁들여 먹으니 건강에도 좋은 메뉴

밀전병: 데치고 볶은 나물 중심

  • 시금치나물, 고사리나물, 도라지나물 등 조리된 나물 활용
  • 오이나 애호박을 채쳐서 소금에 절였다가 넣어 부치기도 함
  • 기본적으로 볶아 만드는 것과, 삶거나 데치는 두 가지 요리 방법으로 채소의 섬유질을 보존한 상태로 익혀 사용

이러한 차이가 중요한 이유는 영양 흡수와 소화 측면에서 큰 장점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채소는 생으로 먹을 때 60% 정도만 흡수가 되고 나머지는 배출되는데 익히면서 그 흡수율은 90%까지 높아집니다. 특히 당근의 경우 생으로 섭취할 경우 주요 영양소인 베타카로틴의 체내흡수율이 10%에 그쳤으나, 익혀먹을 때 체내 흡수율이 60%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연구 결과 나타났습니다.

또한 소화 측면에서도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생으로 채소를 먹으면 분쇄가 잘 되지 않아 소화에 시간이 많이 걸려 데치거나 익혀 먹는 것이 소화에 더 좋습니다. 시금치·미나리·쑥갓 등의 녹색 채소를 데칠 때에는 충분한 양의 물에 약간의 소금을 넣고 뚜껑을 덮지 않은 채 살짝 데친 다음, 찬물에 헹구어 내면 색깔이 선명하고 영양소의 파괴도 줄일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까지 뒷받침됩니다.

결국 월남쌈은 신선함을, 밀전병은 영양 흡수와 소화 효율을 추구한 각각의 음식 문화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죠. 역사와 문화적 깊이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 더 좋은 과학적 조리법까지 담긴 밀전병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우리의 농업사, 제례문화, 계층문화, 그리고 영양학적 지혜가 모두 담긴 종합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훨씬 깊은 가치를 지닙니다.

 

현대에 되살려야 할 이유

우리밀의 재발견

6·25전쟁 이후 다량의 밀가루가 도입되면서부터는 주식 대용으로 쓰이게 되었다는 기록처럼, 현대 한국은 밀 수입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밀 살리기 운동"**과 함께 전통음식 재현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밀전병이 주는 현대적 가치

  1. 건강한 식재료: 우리밀을 사용한 자연스러운 음식
  2. 계절감: 여름철 시식으로서의 절기 문화 복원
  3. 가족 문화: 함께 만들고 나누어 먹는 소통의 매개
  4. 우리 정체성: 월남쌈 같은 외래 음식에 대응하는 우리만의 고유 음식

 

밀전병을 현대식으로 즐기는 법

가정에서 쉽게 만들기

기본 밀전병 만들기:

  • 밀가루 + 물 + 소금으로 묽은 반죽
  • 팬에 얇게 부쳐내기
  • 초간장 또는 겨자소스와 함께

현대식 속재료:

  • 채소: 상추, 깻잎, 오이, 당근
  • 단백질: 불고기, 계란지단, 맛살
  • 소스: 겨자장, 쌈장, 심지어 월남쌈 소스도 잘 어울림

 

특별한 날 구절판 도전하기

현대에는 초 고급 한정식집에서 구색 맞추기 용으로 종종 등장한다. 이 경우는 직원이 바로 옆에서 그자리에서 밀전병을 부쳐주는 편이지만, 가정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간단한 재료로도 8가지 색깔을 맞춰보세요:

  1. 소고기볶음 (갈색)
  2. 계란지단 (노랑)
  3. 오이채 (초록)
  4. 당근채 (주황)
  5. 무채 (흰색)
  6. 표고버섯 (검은색)
  7. 파프리카 (빨강)
  8. 깻잎 (초록)

 

잊혀진 음식에서 찾는 우리의 가치

밀전병은 지금은 생소하지만, 알고 보면 수천 년 이어온 우리의 소중한 음식 문화유산입니다.

밀전병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 귀한 밀로 만든 여름 절식의 지혜
  • 제사상에 오르던 정성의 상징
  • 궁중에서 서민까지 계층을 아우른 음식 문화
  • 현대에는 사라졌지만 복원 가치가 큰 전통

월남쌈도 좋지만, 가끔은 우리 조상들이 수천 년간 이어온 밀전병에도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단순히 옛 음식을 넘어, 우리 곡물과 정성이 담긴 음식 문화로 다시 주목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여름, 햇밀이 나오는 계절에는 직접 밀전병을 부쳐보며 조상들의 지혜를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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