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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

노벨상을 탄 저명한 심리학자는 왜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했을까?

by 모모3 2025.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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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의사결정 전문가의 마지막 결정 - 카너먼이 우리에게 남긴 것

안경을 쓴 백인 남자 노인, 대니엘 카너만 사진
대니얼 카너먼

 

몇 년 전 호기심에 사두었던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앞부분 몇 장만 읽고는 책장에 꽂아둔 채, 오랫동안 먼지만 쌓여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괜히 그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야 할 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책을 펼치기 전, 저자에 대해 검색해 봤습니다. 그리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2024년 3월 27일, 세계적인 심리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카너먼이 스위스에서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2025년 3월에야 공개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이 충격적인 사실 뒤에는 더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 있었습니다.


90세 천재가 보낸 마지막 이메일

2024년 3월 26일, 카너먼은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 한 통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이것은 친구들에게 보내는 작별 편지입니다. 제가 스위스로 향하고 있음을 알려드리며, 3월 27일 저의 생이 끝날 예정입니다."

이 편지에서 그는 놀랍도록 명확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결정을 설명했습니다. "저는 십대 때부터 삶의 마지막 시간들의 비참함과 굴욕은 불필요하다고 믿어왔으며, 지금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활발하고, 삶의 많은 것들을 즐기고 있으며(일일 뉴스 제외), 행복한 사람으로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신장은 마지막 다리에 와 있고, 정신적 실수의 빈도가 늘어나고 있으며, 저는 90세입니다. 이제 떠날 때입니다."

그는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지도, 투석을 받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비교적 건강한 상태였지만, 신장 기능의 악화와 약간의 정신적 실수가 늘어나는 것을 느끼고 있었을 뿐입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 인간 의사결정의 해부학

카너먼의 마지막 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대표작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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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1과 시스템 2: 두 개의 마음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에서 카너먼은 인간의 사고 과정을 두 가지 시스템으로 나눕니다:

시스템 1 (빠른 사고)

  • 직관적이고 자동적인 사고
  • 감정과 경험에 기반한 즉각적 판단
  • 에너지를 거의 소모하지 않음
  • 편향과 오류에 취약

시스템 2 (느린 사고)

  • 의식적이고 분석적인 사고
  • 논리와 규칙에 기반한 신중한 판단
  •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 필요
  • 더 정확하지만 게으른 특성

 

인간은 정말 합리적일까?

카너먼은 "과연 인간은 합리적인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인간이 전혀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연구는 전통 경제학의 전제인 '완전히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개념을 뿌리부터 뒤흔들었습니다.

야구방망이와 공 문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야구방망이와 야구공을 합쳐서 1달러 10센트입니다. 방망이가 공보다 1달러 더 비쌉니다. 공의 가격은?

대부분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10센트"라고 답하지만, 정답은 "5센트"입니다. 시스템 1의 빠른 직관이 우리를 속인 것입니다.

주요 개념들

  • 휴리스틱(Heuristics):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해서 해결하는 방법
  • 인지편향(Cognitive Bias): 체계적인 사고 오류
  • 전망이론(Prospect Theory):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의사결정 이론
  • 앵커링 효과: 첫 번째 정보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상
  • 가용성 휴리스틱: 쉽게 떠오르는 사례로 판단하는 경향

 

의사결정 전문가의 마지막 의사결정

카너먼의 조력자살 결정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평생 연구한 의사결정 원리들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1. 장기적 관점과 데이터 중심 사고

30년간의 친구였던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제이슨 츠바이그는 "대니는 무엇보다도 긴 쇠퇴를 피하고, 자신의 조건으로 떠나고, 자신의 죽음을 소유하고 싶어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카너먼은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 앤 트라이즈만이 치매로 고생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2018년 혈관성 치매로 사망했으며, 이는 그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결정에 중요한 데이터가 되었습니다.

2. 시스템 2의 신중한 계획

카너먼의 죽음은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스위스 정부가 요구하는 집중적인 심리적, 신체적 평가를 미리 거쳐 필요한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마지막 며칠을 파리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며, 어린 시절의 집과 놀이터를 방문했습니다. "걷고 또 걸으며... 웃고 울며 가족과 친구들과 식사했다"고 그의 동반자 바바라 트버스키는 회고했습니다.

3. 명확하고 솔직한 의사소통

그의 마지막 편지는 명료했습니다. 완곡어법도, 과장도 없이, 그저 진실을 평범하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나의 선택을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이것을 공개적 성명으로 만들고 싶지도 않습니다"라고 명시했습니다.

4. 두려움 없는 수용

편지 말미에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결정을 내린 후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고, 죽음을 잠들어서 깨어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지막 기간은 정말 힘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준 고통을 목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관점

카너먼의 선택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1. 삶의 "완성"이란 무엇인가?

 "어떤 삶도 완성되지 않는다"는 관점과 카너먼이 보여준 "충분히 완성된 삶"이라는 개념 사이에는 깊은 철학적 간극이 있습니다.

그는 철학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내 삶을 잘 살았다고 느끼지만, 그것은 하나의 감정일 뿐이다. 나는 내가 한 일에 대해 적당히 만족한다"라고 말했습니다.

2. 존엄성과 자율성의 가치

생명윤리학적 관점에서 존엄성의 개념이 중요합니다. 품위 있는 죽음을 가부장적 개입보다 우선시하는 것입니다. 삶의 가치감이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3. 지성인의 딜레마

지나치게 지성적인 사람일수록 "어떻게 사는가"를 더 중요시합니다. 생존 본능보다 가치관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그의 삶과 연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4. 마지막 순간까지의 호기심

그의 마지막 날, 동반자가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라고 묻자 그는 "뭔가를 배우고 싶다"라고 답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학습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은 진정한 학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

1. 의사결정의 질

카너먼의 선택은 좋은 의사결정의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 충분한 정보 수집
  • 장기적 관점
  • 명확한 기준
  • 감정과 이성의 균형

2. 자기 성찰의 힘

그는 십대 때부터 "존엄성 이전의 죽음"에 대해 믿어왔다고 고백했습니다. 평생에 걸친 자기 성찰이 마지막 순간의 일관된 선택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3. 계획과 준비의 중요성

"나는 대니보다 더 잘 계획된 죽음을 본 적이 없다"는 친구의 평가처럼, 그는 인생의 마지막까지도 체계적으로 접근했습니다.

4.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

그는 가족들이 그의 죽음의 방식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지 않기를 요청했고, 몇 일간은 이야기하지 말 것을 부탁했습니다. 마지막까지도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 가르침

대니얼 카너먼의 조력자살은 단순히 개인적인 선택이 아니라,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가르침일지도 모릅니다.

의사결정에 대한 평생의 연구가 어떻게 궁극의 의사결정에 적용되는지 보여준 살아있는 교과서였습니다. 그는 시스템 1의 두려움과 시스템 2의 합리적 분석을 모두 고려했고, 데이터에 기반해 장기적 관점에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그의 선택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철학과 연구 결과에 일관되게 살았습니다.

"삶이 완성되었다"는 말에 여전히 동의하기 어렵지만, 90년의 삶을 통해 인간의 의사결정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혁명적으로 바꾼 한 학자가 보여준 마지막 의사결정의 품격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저는 책장에서 먼지를 털고 꺼낸 『생각에 관한 생각』을 다시 펼쳐들 용기를 얻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저 역시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선택들에 대해 조금 더 지혜로워져 있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조력자살에 대한 다양한 윤리적, 종교적, 법적 관점이 존재함을 인정하며, 이 글은 한 개인의 선택을 통해 의사결정과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려는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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