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공이다.”
부처님이 설한 금강경의 핵심 구절입니다.
형상도, 나도, 남도, 나아가 중생이라는 구분조차 실체가 없다는 통찰.
하지만 여기에 의문이 남습니다.
정말 ‘깨달음’이라는 것은 실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일까요?
최근 금강경을 현대식 대화체로 풀어 만든 짧은 영상을 올리고, 그 오디오 녹음을 산책하며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처님의 말씀 속에서 불가능한 것을 설법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말하면서도, 부처님은 평생 불쌍한 중생을 구원하려고 애쓰셨습니다.
나와 남의 구분이 없고 모두가 하나라면, 왜 굳이 구원하려 했을까요?
그것은 어쩌면 ‘공’이라는 철학과 ‘중생을 위한 행동’이 모순처럼 보이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1. 깨달음, 원래 존재한 적 없는 것?

비행기가 발명되기 전, 인간에게 ‘날 수 있다’는 개념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날고자 하는 욕망은 존재했고, 마침내 비행기라는 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냈죠.
깨달음도 이와 비슷할 수 있습니다.
태고의 인류, 사냥과 생존에 매달리던 조상들에게 ‘깨달음’이라는 개념이 있었을까요?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삶의 고통, 부조리,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인간은 해답을 갈망했습니다.
그 해답이 바로 ‘깨달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정신적 발명품일 수 있습니다.
즉, 깨달음은 ‘발견’이 아니라 ‘발명’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2. 금강경 속 공덕과 ‘미끼’의 문제
금강경을 읽다 보면 공덕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이 경을 믿고 전하면 한량없는 공덕을 얻는다”는 식이죠.
그런데 이 ‘공덕’은 실체가 있는 보상이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렇다면 이 공덕이라는 말이, 깨달음으로 사람을 이끄는 ‘당근’ 역할을 한 것은 아닐까요?
즉, 실체 없는 것을 보상으로 내세워 사람들을 설법 곁에 머물게 하는 장치일 수 있습니다.
3. 2,500년의 시간과 부재하는 ‘완전한 깨달은 자’
부처님이 평생을 걸쳐 중생들의 깨달음을 위해 애쓰셨지만,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부처님과 동등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인정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역사 속 위대한 스승들도 있지만, 모두가 제각기 다른 깨달음의 정의를 말했습니다.
이는 ‘깨달음’이 본래 하나의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시대와 문화, 개인의 내적 경험이 만든 상대적 개념임을 시사합니다.
4. 깨달음, 그리고 인류의 종말?
흥미롭게도, 만약 인류 전원이 완전히 깨달음을 얻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곧 인류라는 종의 종말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욕망과 분별의 소멸을 뜻하는데,
욕망이 사라진 종은 생존과 번식을 지속할 동력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깨달음은 인류 보존의 본능과는 반대 방향에 있습니다.
영화 혹'성탈출'과 깨달음

저는 금강경 영상 오디오를 들으면서 불현듯 아주 오래전 충격적 결말로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한 영화 '혹성탈출'이 떠올랐습니다.
1968년 개봉한 영화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나시나요?
주인공은 낯선 행성에서 원숭이들이 지배하는 사회를 보고, 그곳이 지구와 전혀 다른 세계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바닷가에 반쯤 파묻힌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며, 여기가 바로 인류 문명이 멸망한 미래의 지구였음을 깨닫습니다.
그 충격적인 반전은 마치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지금까지 무엇을 깨달았다고 믿었는가?
그 믿음이 허상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인공은 자신이 알고 있던 ‘진실’이 완전히 붕괴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이는 우리가 ‘깨달음’이라고 부르는 관념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평생을 추구한 진리가, 사실은 잘못된 전제 위에 세워진 환상일 수도 있는 것이죠.

깨달음은 ‘마지막 미지의 신기루’일지도
결국 깨달음은 태곳적부터 실재하던 어떤 보물이 아니라,
인간이 고통 속에서 스스로에게 제시한 ‘정신적 발명품’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방법을 제공하듯, 깨달음이라는 발명품도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으니까요.
다만, 그 실체를 절대적 진리로 믿는 순간, 우리는 허상을 '실재'로 착각할 위험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 허상은, 어쩌면 우리가 끝없이 걸어가게 만드는 사막 속 신기루와도 같을지 모릅니다.
긴 탐구의 끝에 도달한 ‘진실’이 반드시 위안이나 구원이 아닐 수 있다는 점.
때로는 그 진실이 허상임을 깨닫는 것이, 가장 큰 깨달음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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